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빌헬름 카나리스 (문단 편집) === 우익 활동, 고속 승진 === [[파일:external/2.bp.blogspot.com/Korvettenkapit%25C3%25A4n%2BCanaris%2Bin%2Bthe%2Bperiod%2B1924%2B%25E2%2580%2593%2B1929%252C%2Bwhen%2Bhe%2Bserved%2Bwith%2Bthe%2BMarineleitung.jpg]] 해군 소령(1924~1929) 시절의 카나리스 전쟁이 끝난 뒤에도 그는 계속 해군에 남기로 했고 종전 이듬해인 1919년 에리카 바그라는 여인과 결혼, 두 명의 딸을 두게 된다. 많은 군인들과 마찬가지로 그 역시 급속도로 확산되어 가던 사회주의 세력들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우경화되었고 좌익 세력에 반대하는 군인들의 모임인 [[자유군단]][* 1차 대전 종전 후 제대 군인 및 우익 장교[* 바이마르 공화국은 군인들의 정치 활동을 폭넓게 보장했다. 히틀러 집권 후부터는 군인을 포함한 공무원에게 선거권이 주어지지 않는 등 제약이 심해졌다.]들에 의해 독일에서 조직된 극우 의용병 단체이다. 좌익의 무장 단체 스파르타쿠스단을 괴멸시킨 것으로 유명하다. 해체 후 구성원 상당수가 돌격대 등에 가입하기도 했다.]의 회원이 되기도 했다. 작아진 군 규모로 인해 진급길이 막히다시피 했던 [[바이마르 공화국]] 군대에서는 이례적으로[* [[에르빈 롬멜]]도 1920년대 내내 대위 계급에 머물러야 했을 정도였다.] 고속으로 진급하여, 1931년에는 대령으로 진급해 경순양함 베를린과 [[도이칠란트급 전함]] 슐레지엔의 함장을 역임하기도 했다. 이후부터 자신의 주특기라 할 수 있는 정보 관련 업무를 맡게 되었고, 이때부터 독일 내 고위 인사들과 교류하면서 정치에도 참여하기 시작했는데, 그중에는 당연히 [[나치당]]의 주요 인물들도 포함되어 있었으며 나치당의 집권에 그도 협력했다. 1935년 1월, 카나리스는 방첩국 [[아프베어]]의 국장에 취임했고, 얼마 뒤 [[소장(계급)|소장]]으로 승진하면서 에스파냐를 거점으로 한 독일 스파이 조직을 구성하였다. [[스페인 내전|에스파냐 내전]]에 주저하던 히틀러를 설득, 독일이 [[프란시스코 프랑코]]의 반란군을 지원하도록 유도하기도 했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